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왼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고등학생 때 문학 참고서를 보다가 (말죽거리 잔혹사 등으로 유명한 감독이기도 한) 유하 시인의 생이란 시에 '삶은 마약과도 같아서 끊을 길이 없구나'란 구절이 나온 걸 봤다.
입시 때 온갖 스트레스 받으면서 이 시 볼 때 언뜻 황당했는데,(그의 영화를 미안하지만 단 한 편도 안 봤는데.. 워낙 회자가 많이 됐으니 어떤 분위기일지 알 것도 같았다(...) 더군다나 '쌍화점' 같은 영화도 만든 사람이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대략 알 것도 같았다. 삶이 정말 마약 같은 것이라면 거기에 잘, 안전하게 중독되고 싶기도.
- '우아한 거짓말'을 계속 반복하게 강요하는 이곳에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제목부터가 우리에게 상당히 쓰라린 일갈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나는 괜찮다는 ‘우아한 거짓말’을 해 오고 있는가.
작가의 전작인 완득이와 비교했을 때 문제의식은 더 미시적일지 모르지만 톤은 더 무거워졌고 상황 묘사는 훨씬 서늘해졌다.
작중 곳곳에서 암시되듯이 집단 괴롭힘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가장 뼈아픈 점 중 하나는 한국 사회의 폭력적인 면모가 일상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사실을 너무나 일찍 깨닫는다는 것이니.(외국이라고 없는 문제가 전혀 아니지만은.)
오늘도 누군가에게 자신은 괜찮다는 '우아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기를.
(이때의 나는 좀 서슬퍼랬네; 그나마 덜어내고 어조를 누그러뜨린 것..)
백석의 나의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시 자체는 아름다운데 뒷이야기를 알면 꺼림직한 부분(바람둥이..)이 있어서 겨울 시로는 전에도 종종 언급했던 이용악 시인의 그리움을 더 좋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