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무대 위에서 더 다양한 유전자를, 더 오랜 시간 동안, 더 높은 강도로 다듬어 온 고양이가 본래의 터줏대감이던 살쾡이를 밀어내고 인간의 곁으로 들어온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밀려난 살쾡이들은 야생에 머무르고 있던 삵에게 다시 흡수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하지만 그 대가로 삵은 인간에게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얻었고, 고양이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번성하는 대신 끝없는 그들의 욕망에 휘둘리는 운명을 맞이했다.
- 바다루, "기기묘묘 고양이 한국사", 서해문집, 2021, p55
장타이옌은 자신이 초안한 '아주화친회 규약(The Asiatic Humanitarian Brotherhood)'을 중국어와 영어로 발표하고, "제국주의에 항거하여 아시아에서 주권을 상실한 민족이 모두 독립하기를 바란다"라는 취지를 선포했다. 규약에 따라 침략주의자를 제외한 모든 아시아인, 즉 민족주의, 공화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도쿄에 화친회 본부를 두고, 중국, 인도, 조선,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 분회를 설립하기로 했다. 또한 회장이나 간사 등의 직무를 따로 두지 않고, 회원은 모두 평등하며, 회원들은 매달 정기적으로 한 차례 집회를 갖고 긴밀하게 연락하면서 서로 소식을 전하도록 규정했다. 장타이옌은 또한《민보》를 이용해 아주화친회의 취지를 적극 선전했다.
-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 Humanist, 2012, p138.
만주사변 이후 1932년 일본군 제20사단 참모 가네코 데이이치 대좌는 조선으로 와서 투라니즘을 전파하는 강연을 지속적으로 열었다. 투라니즘*은 1933년 "대아세아협회"의 탄생으로 새로운 모습을 갖췄다. 대아시아주의는 친일파 조선인들에게도 전파되어 갔다. 가네코의 주장은 이러했다.
"가장 용감하고 지능이 뛰어난 민족은 투란 민족이고, 일본인이 우수한 것은 국제 관념에 기인한 것이므로 투란 민족인 조선인도 국제 관념을 함양하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해달라."
- 이문영, "유사역사학 비판", 역사비평사, 2018, p66
* 투라니즘은 몇 구절로 설명하기엔 복잡해서 네이버 검색 결과 등을 참조 바랍니다.. 특히 이문영 (초록불) 선생의 관련 언급이 있는 논문을 역사문제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찾아볼 수 있더군요.(아래 링크 참조)
상투적 표현들은 물론 진부하긴 하지만, 진부하다고 피할 수가 없다. 진부하게 느껴질 만큼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이상 진실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상투어들은, 어떤 한 사람이 감히 끊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공통적으로 자기잡게 된 관념이다. 상투적 표현은 원래의 표현이 해석될 수 있는 수많은 맥락 중에서 특별히 어느 한 쪽으로만 '받아들여진' '통용되는' 의미와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 통념적 해석은 기꺼이 대중의 편견과 연결되어 있으며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다.
- 김수경, "노랫말의 힘, 추억과 상투성의 변주", 책세상, 2005, p90~91
더구나 록의 강렬하고 위악적인 에너지와 반사회적 태도는 기존 음악의 고분고분한 감수성에 싫증을 느끼는 순간 가장 매력적인 상품으로 둔갑할 수 있다. 따라서 록은 대중음악이 그렇듯 상업주의 레이더 망에 항시 노출되어 있고 일부는 거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첨병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도 했다. 물론 공룡이 되어버린 록음악과 밴드에 대한 부정은 록 안에서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방식은 내파가 될 수도 있고, 조롱과 패러디가 될 수도 있다. 또는 록음악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 록 내부가 아닌 그 밖에 존재할 수도 있다. 이 말은 부정의 역사가 록음악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이야기와도 상통한다. 이렇게 본다면 록 정신이라는 것은 다양한 록을 형이상학적으로 사유함으로써 역동적이고 가변적인 록의 가능성 즉 생성의 힘을 획일적 기준에 가두는 결과를 낳게 한다.
- 박애경, "가요, 어떻게 읽을 것인가", 책세상, 2000
은희
엄마...
엄마
응?
은희
엄마, 외삼촌 보고 싶어?
긴 침묵. 엄마, 뒷모습을 보인 채로 답한다.
엄마
... 그냥 이상해.
은희
뭐가?
엄마
너네 외삼촌이 이제 없다는 게.
엄마, 모든 행동을 멈추고 말이 없다. 그러기를 잠시. 엄마,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접시 가득 감자전을 담아 온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감자전. 은희, 기력을 찾아 감자전을 호호 불어 가며 맛있게 먹는다.
은희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 묘한 따스함.
- 김보라, "벌새" 시나리오집 p199~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