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을 떴다. 눈 이라는 것이 나같은 존재에게 있어 시야와 결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있다. 하지만 나를 만든 저 사람들은 눈을 통해 시야를 얻기에, 나 또한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솔직히 어리둥절하다.
나는 분명히 없던 존재이다. 저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나는 저들이 신을 원했기에 신으로 태어났다.
저런 식으로 제사를 지내며 기적을 바라도, 결국 기적을 만들어낸건 사람들인데. 그렇다면 나는 저들을 신이라 불러야 하는 것 아닐까?
도무지 알 수 없다.
저들은 나를 부드러운 풀씨의 신이라 부른다. 사람들이 느끼기에 가장 맛있고 좋은 것이 부드러운 풀씨라 이렇게 제사를 지내왔단다.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의 모습을 짓고, 정성을 드리고, 보살펴 주고.
일단 그러한 정성스러운 마음 덕분에 태어났는데, 그 기적이라는 것을 들어주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저들이 풀씨의 신을 바랐기에 나는 씨앗이라는 영역을 가지고 있다.
#소설토돈
워플라인의 리델 글리제스
햇살이 따갑습니다. 그 탓에 리델은 눈을 뜹니다. 기지개 한 번 펴고서, 이불 속을 뒹굴거리지 않고 한 번에 침대를 벗어납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리델은 성실해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허락된 시간은 너무나 짧기 때문입니다. 백년, 천년을 살아도 성공이 미지수인 일입니다. 그렇기에 리델은 성실히 이불을 갭니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인간이 되어야 일이 수월하니까요.
몸이 짧아 간단한 일에도 체력소모가 큽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금방 방전되는 만큼 금방 채워집니다. 리델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어요.
드디어 방 정리를 다 끝냈습니다. 리델은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갑니다. 기름칠이 잘 된 문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리델은 살금살금 걷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오랜 외근을 마치고 오신 어머니를 깨우고 싶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