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보고 하는 말이지만, 어떤 취지이든 검은 머리 외국인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와도 되는가에는 굉장한 의문을 갖고 있다. 한국과 거주국 사이의 경계인인 재외 교포에 대한 차별적, 혐오적 맥락을 갖고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있었던 걸로 알고.
https://news.kbs.co.kr/mobile/news/view.do?ncd=7629653#layer-sns
19세기 말 레오폴트 2세의 개인 사유지였던 콩고에서 벌어진 만행(한 예로 할당된 작업량을 못 채우면 노동자 손목을 자름..)은 당시 제국주의 열강국들도 경악했을 정도고.. 벨기에 정부가 직할 식민지로 바꿨다가 독립한 뒤로도 독립영웅이자 초대 총리인 루뭄바에 대한 모부투의 쿠데타를 지지했고 그 시신은 화장시켰으나 한 경찰관이 '전리품'처럼 금니를 빼돌려 자기네 나라로 가져가 버렸다.. 그 금니는 2016년에에야 해당 경찰관의 딸로부터 압수되었고 작년에야 본국으로 반환되었다고 한다.
붓) 현재 베트남 넷플릭스 3위가 나온 지 한참 된 철인왕후(중국이 배후라는 등의 과장된 음모론은 안 믿지만 지긋지긋한 조선 관련 부패 관료 대 개혁 왕족 클리셰 - 이런 왕족 영웅서사 근간의 함의가 개인적으론 위험하다고 생각.. - 가 눈에 띄어서 난 별로 안 좋아하긴 했는데..)에 4위는 사이비 다루는 다큐멘터리인 나는 신이다.. 놀랍네
생각해 보면 저는 면전에서 매몰차게 뿌리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사이비에게 당할 뻔한 기회가 몇 차례 있었는데(심지어 대학 고학년 때도 그랬습니다..) 동시에 의심 많은 성격 때문에 이후에 오는 연락에 잘 응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안전했던듯합니다..
연락처를 주는 것부터가 위험한 일이었지만요(...)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3091558001
(사이비가 대학가에서 여성, 새내기, 지방 출신 등을 집중적으로 노린다는 내용 등을 담은 경향신문 기사)
벌새의 김보라 감독은 기회 될 때마다 명상이 심리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설파하시던데 내 경우에도 그럴까..
나는 고등학교 특활(정확한 명칭 기억 안 남..) 시간에 사서 선생님들이 명상 가르쳐준다고 하셨는데 입시 공부 때문에 피곤해서 결국 졸게 되던데..
뭐라 할 말은 많지만.. 일단 본인이 지지하는 쪽이 아닌 사람들에게 냉소를 쏟아내는 것만으론 해결되는 게 없을 것 같아요. 그러게 우리 당 왜 안 뽑았냐고 비아냥대는 것만으로는요.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다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고요.
※ 우사에 대해 추가 설명하자면, 김규식, 조소앙 등 임정 파리위원부 소속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은 호찌민이 1919~1920년 파리에 체류할 당시 긴밀히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프랑스 정보경찰 보고서가 언론에 보도됐던 적도 있습니다.
호찌민은 심지어 자신을 감시한 장이란 이름의 프랑스 경찰관을(!) 임정 파리위원부 황기환 서기장에게 직접 소개해주기도 했다는군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1&aid=0010369540&sid1=001
(이밖에 1917년에는 신규식, 조성환 등 재중 독립운동가들이 조선사회당이란 걸 만들고 조소앙을 대표로 파견해 '만국사회당대회' - 반전 성향 제2인터내셔널 소수파 모임인듯합니다.. 에서 조선 독립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등 생각보다 일찍부터 조선 독립운동가들의 사회주의 연관 국제적인 활동이 많았나 봅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81&aid=0002991734&sid1=001
https://terms.naver.com/entry.nhn?cid=46623&docId=548792&categoryId=46623
김시현 선생이 원래 부인이 따로 있었던 거구나.. 허허; 그나저나 두 분이 처음 만난 게 코민테른의 1922년 모스크바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 자리에서였다는 얘기가..
(홍범도, 여운형 등이 참여했던 바로 그 행사 맞습니다. 홍범도 장군이 이 무렵 그 레닌한테서 권총을 선물로 받고 평생 간직했었죠. KBS가 2020년 말에 공개한 홍범도 장군 관련 영상에 권애라 선생 등의 모습도 보인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파리강화회의 참여 후 열강국에 실망한 김규식은 이때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을 흡혈귀라 비난해 환호를 받기도.. 이후 다시 반공 성향이 됐지만요)
https://n.news.naver.com/article/081/0003209662?sid=102
※ 한편 영상 속에 있는 최진동 장군의 경우 중일전쟁 이후 변절해 일제에 협조했다는 의혹도 있고 그 행적에 관한 설왕설래가 있습니다..
어차피 에스파냐가 공식 표기 아닌지도 오랜데 창비식으로 아예 에스빠냐, 에스빠냐어라고 불러볼까..?
파리를 '빠리'라 표기할 용기는 없지만(...)
※ 이왕 잡상 보신 김에 무키무키만만수의 우주대명곡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듣고 가세요..
고등학생 때 문학 참고서를 보다가 (말죽거리 잔혹사 등으로 유명한 감독이기도 한) 유하 시인의 생이란 시에 '삶은 마약과도 같아서 끊을 길이 없구나'란 구절이 나온 걸 봤다.
입시 때 온갖 스트레스 받으면서 이 시 볼 때 언뜻 황당했는데,(그의 영화를 미안하지만 단 한 편도 안 봤는데.. 워낙 회자가 많이 됐으니 어떤 분위기일지 알 것도 같았다(...) 더군다나 '쌍화점' 같은 영화도 만든 사람이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대략 알 것도 같았다. 삶이 정말 마약 같은 것이라면 거기에 잘, 안전하게 중독되고 싶기도.
사실 정약용이 노비제를 하늘이 정한 제도라며 옹호하는 글이 2010년대 초반 고려대 논술에 출제되어서 수험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적도 있고.. 오늘날의 관점에서 마냥 환상을 갖고 보면 아마 이른바 실학자들이라 불릴 만한 사람들 대개에게 실망을 갖게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시대적 한계 속에서 이들이 어떤 길을 걷고 어떤 행보를 했는지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봐야겠지요.
(그래서 저는 정조를 개혁군주로만 묘사한 숱한 작품들이나 다산의 형인 정약전을 무슨 공화주의자처럼 묘사한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 별로 안 좋아합니다. 자산어보는 개인적으로 현대사에 대한 은유라 생각하긴 하는데.. 현대사를 무리하게 과거사에 이입하려 할 때 생기는 문제들이 있지요.)
1930년대 북만주에서 공산주의자-우파 민족주의자-아나키스트 세 세력의 유혈충돌을 다룬 콘텐츠가 나오면 어떨까 싶었지만 너무 예민한 주제일지도. 김좌진의 죽음이 묘사 안 될 수 없으니..
다산 정약용이 유배간 뒤 전에 벼슬길에 올라 헛된 꿈을 꾸었다며 나 자신을 지키기가 어렵다고 한 글이 수오재기인데, 첫째 형인 정약현이 지은 고향 집 건물 이름이 바로 수오재(지킬 수, 나 오, 집 재)로 거기서 따온 제목이었다.
어려서 그의 성찰적인 이글을 인상적으로 봤는데, 정약현의 사위가 다름아닌 황사영(정조 사후인 1801년 정순왕후가 남인 등 천주교를 탄압한 신유박해 와중에 제천 배론에서 도피생활하면서 베이징에 있는 프랑스 주교에게 기독교 믿는 서구 열강국들이 함대를 끌고와 조선을 치게 해달라는 부탁의 백서를 썼다가 관에 체포된 뒤 처형된 사람, 이를 황사영 백서 사건이라 하며 천주교 신도들이 추가적으로 국문당하거나 처형, 또는 유배지 조정되는 일이 벌어진다.)이었다는 사실을 알곤 감상이 더 복잡해졌다(...)
찾아보니 정약현은 천주교를 믿지 않아 화를 면했고 현재의 남양주에 있는 마재 고향 집을 지키다가 1821년에 세상을 떠났구나..
시사적으로 진지한 주제에 대해 의견이 다른 사람과 논의 또는 논쟁할 때는 ㅋㅋㅋ를 붙이며 상대방 조롱하지 말기 캠페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주저리잡상